
남한산성은 서울의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이다. 둘레 12km에 이르며 중심 도시가 입지할 수 있을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건설된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7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져 여러 차례 재건되었으며, 특히 17세기 만주족이 건설한 청의 공격에 대비해 크게 중건된 바 있어,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 체계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한산성은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수용하면서 서양식 무기 도입에 따른 성곽축조 기술의 변화를 종합한 군사 방어기술의 개념을 집대성하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며 일본, 중국과 광범위하게 상호 교류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화포와 무기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고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산성을 지속적으로 증·개축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남한산성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간 축성술과 도시 계획술을 종합적으로 구현하게 되었다. 즉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전해온 성제(城制)의 영향과 서구의 화기(火器) 도입에 따라 변화된 축성 기술의 양상을 반영하면서 당시의 방어적 군사 공학 개념의 총체를 구현한 성채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지방의 도성이었으면서 아직도 대를 이어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인 남한산성의 성곽 안쪽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군사·민간·종교 시설 건축물의 증거가 남아 있다. 남한산성은 한민족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